[142] 델리 스파이스 -Y.A.T.C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좀 지나고 이제 나도 음악 좀 들었구나 싶을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유명한 몇몇 뮤지션의 음악만 들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머지는 다 그 변주아냐?'

난 물론 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얘길 하겠지만 사실 이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특히 블루스나 헤비메탈처럼 장르의 규칙이 어느 정도 확립된 쪽에서는 넓게 파는 것 보다는 한 뮤지션을 깊게 파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그 뮤지션이 지나치게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더구나 이른바 B급 아티스트의 경우 한 앨범에서 건질만한 곡이 하나 많게는 두 개인 경우가 허다한 바 그걸 듣자고 앨범 하나를 구입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 역시 이런 생각을 갖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한 두곡이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

아무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소위 명반으로 칭송받는 음반들에는 대략 그만한 가치가 있는게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집중적으로 듣는 것이 자원의 효율적인 운용의 측면에서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만족을 줄 확률은 높고 실패할 확률은 낮으므로!

하지만 명반이 명반이 된 데에는 '역설적으로' 그만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해 보편성을 투철하게 획득했다는 것이 그것인데 이 투철한 보편성이 일종의 족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만 하기 때문에 널리 인정 받았다'는 말 뒤에는 그것에서 어떤 새로운 상상력과 빈틈을 찌르는 예리함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기존 세력이 형성해 놓은 자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B급의 진정한 의미가 찬란하게 샘솟는 것이다. -말이 자꾸 뱅뱅 돌아 미안하지만 나의 이런 진술은 '한국에서 음악 듣기'의 현실을 감안하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에겐 '비틀즈' 정도를 제대로 들어줄 안목조차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중의 수준에선 A급이니 B급이니 거론하는 것 조차 사치이다. 쉽게 말하자면 '비틀즈'를 들려줬을 때 거기서 일말의 보편성조차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얘기다.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적인 핵심은 윤준호와 김민규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델리 히트곡들은 저 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의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계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 딮 퍼플, AC/DC 같은 거물들로 깔끔하게 정리될 것 같았던 하드락의 계보가 Humble Pie, Steppenwolf, Bad Company 등으로 갈라지고 또 그 뒤의 무수히 많은 B급밴드들에 의해 가지를 키웠듯이, 그리고 제플린과 딮퍼플이 결코 보여주지 못했던 음악세계를 바로 그 B급들이 보여주었듯이, 여기 델리에서도 드러머 최재혁은 윤준호와 김민규가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코 대중음악계의 주류가 될 수 없었던 모던락 그룹 델리의 음악 내에서 김민규와 윤준호의 틈에 끼어 또다시 주류가 될 수 없었던 최재혁, 하지만 그가 Y.A.T.C 같은 곡에서 보여줬던 다소 투박하면서도 자기만의 감성으로 충만한 노래 만들기와 보컬은 오래도록 기억할만 하다. 이것은 델리에게는 득이고, 우리에게는 행복이다.


-최재혁이 델리 내에서 '비주류'였고, '틈에 끼었'고 하는 표현이 좀 서먹하게 들릴 수 있겠다. 이건 '권력 투쟁' 이런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것은 다만 델리의 음악 작업내에서 그가 비교적 작은 지분을 점했다는 것과 그가 그 작은 지분으로도 델리의 음악적 외연을 넓히는데 큰 기여를 했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이다.



And